개발 완성품을 테스트해봐야 한다는 개발 업계 속어로 '개밥 테스트'라는 표현이 있음 그러나 테스트가 기능 확인에 그치는 경우 많아, 실제 사용자 경험과는 거리 멀어 사용자의 눈높이에서 개발을 해야 진짜 'Great Product' 만들 수 있는 것
개발자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용어로 '개밥 테스트'라는 표현이 있다. 애완견한테 먹이를 주기 전에 주인이 직접 먹어보고 괜찮은 음식인지 확인을 해야 된다는 사고 방식을 빌려와서, 개발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때 실제로 써 보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지적하는데 쓰이는 표현이다.
상식적으로 이런 '개밥 테스트'를 안 하는 개발자는 없을 것 같기는 한데, 아무리 개발을 완벽하게 하고, 사용자들을 예측해도 실제 사용자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. 그 사이의 간격을 보통 UX(User Experience, 사용자 경험) 전문가들이 메워넣으면서 디자인을 뜯어고치거나, 개발 결과물을 수정한다고 하는데,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. 그 누구도 실제 사용자는 아니기 때문이다.
실제 사용자에 준하는 QA라는 사람들을 데려다놔도 완벽하진 않다. 사용자 숫자가 늘면 늘수록 온갖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생기고, 결국에는 조금씩 '운영 개발'이라는 걸 하면서 서비스의 완성도를 점차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게 내가 아는 서비스 개발이다.
개발자-안-뽑음_202312콘텐츠 생산자와 콘텐츠 소비자 사이의 간격
이제는 15년이 훌쩍 넘은 첫 직장 시절, 나는 하루에 많을 때는 100장도 넘는 PPT, Word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.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그 업무를 그렇게 싫어하질 않았는데, 아니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학부 3, 4학년을 싹 갈아넣고 외국계 증권사의 IBD를 가기위해 발악(?)을 했었는데, 문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오타 수정, 표현 수정을 하는 그 '라스트 마일'이 너무너무 싫었다.
밤을 새고 집을 못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만큼 혹사(?)를 당했지만, 잠 안 자고 보고서에 들어간 콘텐츠를 뽑아내던 그 순간만큼은 꽤나 즐겁게 일을 했었다. 그러다 내 기준에 99%가 완성된 보고서를 올리고 부장님, 이사님이 "야 이X끼야, 넌 네가 써 놓고 안 읽냐? 읽지도 않고 나한테 갖다 준거냐?"는 꾸중을 들으면 즐거웠던 기분은 싹 날아가고 나 자신의 바보스러움 때문에 너무너무 괴롭더라.
그렇게 오타를 마구 찍어내고,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지 못하는 무능력은 지금도 해결이 안 됐고, 가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많다. 처음 쓸 때부터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텐데, 최소한 써 놓고 난 다음에 이사님, 부장님의 당시 질책대로 한번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봤으면 완성도가 높아졌을텐데, 난 왜 그걸 그렇게 못했었을까?
그런데, 개발자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서비스들을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. 왜 코드가 돌아간다는 이유로 이 부분을 더 살펴보지 않았을까, 왜 이걸 쓰는 사람들이 기능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부분을 놓쳤을까 싶은데, 그 시절 내가 그랬듯이 그냥 정신없이 기능을 찍어 냈을 것이고, 남들이 보는 관점으로 보정되는 것 없이 자기만의 시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.
개발 결과물, UX 결과물, 그리고 진짜 사용자
개발자들도, 디자이너들도, 기획자들도 다들 '만드는 사람들'이다. 이 분들 중 매출액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, 적어도 나는 '사용자의 눈높이'를 얼마나 잘 갖추고 서비스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.
단순히 '개밥 테스트'를 하고 서비스 다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, 실제로 사용자가 되어서 혼자 이것저것 써 보는 것이다. 아무리 QA가 일을 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, 결국은 생산자 본인이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. 난 파비리서치에 올라오는 우리 기자, 연구원들의 글을 밤에 자기 전에 꼭 읽는다. 혹시 오타가 있으면 지적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, 쓰라고 시킨 내용들이 잘 전달됐는지도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, 그 전에 내가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잠들고 싶기 때문이다. 가끔은 다른 언론사들, 연구소 보고서들을 검색해서 찾아보고, "역시 우리만큼 깊은 분석을 한 곳은 없군" 같은 자뻑에 빠지기도 하고, 반대로 다른 보고서들에서 다룬 내용 중에 기사에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포인트를 놓쳤으면 나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기도 한다.
스티브 잡스가 말한 'Great Product'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서 수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,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쓰고 싶으냐를 충족시키는 상품, 아니 나와 비슷한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선택할만한 상품의 자격이 있는지를 사용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상품의 완성도가 올라가고 'Great Product'가 될 후보 자격을 얻을 것이다.
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? 음...글쎄요?
[개안뽑] 시리즈를 쓰면서 주변에서 "네가 워드프레스 개발자 뽑았어야 되는데 개발자를 잘못 뽑은거다"라는 지적을 받는데, 난 여전히 개발자의 사용 언어로 그렇게 개발자를 구분하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. 그리고, 워드프레스 개발자라는 사람을 뽑아도 위에서 지적한 '사용자 경험'의 결함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피차 일반일 것 같다. 그간 한국에서 봤던 개발자 분들 중에 게임사에서 QA 작업을 수십번도 더 해보신 분들마저도 기능 개발 오류를 찾는 부분은 전문가여도 정작 사용자들이 어떻게 쓸지를 짐작하고 거기에 맞춰 기획적인 사고력을 갖춘 경우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.
앞으로 다시 개발자를 뽑는다면, 아마 '워드프레스 개발자'를 뽑아야 될 것 같은데, PHP를 잘 알고, 백엔드, 프론트 엔드 개발 경험이 풍부하고, 워드프레스의 테마를 만들어 봤고, 서비스하는 플러그인을 만들어 본 경력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, 워드프레스로 자기 회사 서비스들을 만들어보면서 불만이 있던 부분을 이래저래 뜯어고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을 것 같다. 한국식으로 개발자, 디자이너, 기획자를 분리해라면 3가지 기능을 적당히 해 본, 한국에서 어디 하나의 직군으로 취직하기 쉽지 않은 분들일 것 같은데, 그간 내 경험상 그런 분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내 업무를 대체해줄 수 있을 것 같다.
최근에 회사 내부에서는 100만원 남짓 들어간 서버 시스템으로 구글 페이지 스피드에서 전 영역 100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낼 수 있는만큼, 이걸 Copy & Paste만 해주고 구글 기준 100점 받고 싶어하는 분들께 웹사이트 만들어주는 상품을 팔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온다. 웹사이트 제작 전문 에이전시들이 받는 금액의 절반만 받아도 충분히 수익성이 나올 수 있고, 구매자가 직접 이것저것 뜯어고치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, 수익성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단다.
글쎄, 수익성이 엄청나게 좋을 것 같지도 않고,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의 업무를 내가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, 담당자를 1명 뽑는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뽑아야할까는 생각을 한번 해 봤다. 우리 회사 서비스에 손을 대는 것도 바빠서 여유가 안 되는 상황인데, 서비스가 되어버리면 정말 담당자가 따로 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.
어차피 고객이 Copy & Paste된 페이지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. 최소한 로고라도 바꿔야 하고, 필요한 기능들이 다를 수도 있다. 그걸 다 맞춰줘야 되는데, 하나하나 들어주고, 거기에 맞춰 필요한 기능들을 설명해주고, 직접 해 볼만한 부분, 해 줘야 되는 부분들을 판단하고 답해줘야 한다. 한국에서 '개밥 테스트'해서 던져주면 자기 업무는 끝이라는 개발자가 이걸 할 수 있을까?
고객의 Needs를 잘 이해하고, 필요한 고민을 함께 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, 그 모든 걸 1명한테 다 맡기는건 '너니까 할 수 있는걸 딴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악독한 대표'라는 꾸중을 들었다.
내가 악독한 대표라면 결국엔 웹사이트 만들고 싶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인력을 갖춘 회사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한다. 내가 악독한 사람이 되는, 사고의 폭이 좁은 사람들 여럿을 써야만 겨우 사업이 돌아가도록 구성된, 이런 한국IT업계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괴롭다. 그러니까 '[개안뽑]'을 이렇게 외롭게 외치고 있는 거겠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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